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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場所/내가 있을 “그 곳”


イ・ヒョンジュ


居場所|イ・ヒョンジュ

 

 私は在日韓国人である。日本に来たのは大学一年生の時だったが、日本語を話すとき、あまり訛りが出ないらしく、名乗らずにいると日本人だと思われることがよくあるし、こうして日本語で文章を書くことだってできる。「いつから日本にいるの? 語学学校に通っていたの?」と聞かれることが度々あるが、私が日本に住み始めたのは一九歳の時からで、語学学校に通うどころか、誰かから日本語という言語を学んだことすらない。

 言葉の通り日本に在住する韓国人であり、しかも、親の片方が日本人だとか、祖父母世代から日本に移住したとか、そんな歴史は持っていない私が、それでも、高校二年生の時には日本語を話せるようになっていた。きっかけは日本の国民的アイドルグループ、嵐との出会いなのだが、いま考えてみれば、嵐は本当に「きっかけ」に過ぎなかったように思う。

 一〇代の私は、自分の居場所を探し始めていた。親にはたっぷり愛を注がれて育ち、四つ上の兄とも割と仲は良い。女子中学校に通っていた時、女の園特有のいざこざで一苦労したけど、高校に進んでからは毎日楽しく過ごしていたと思う。それでも、ここじゃないどこかに自分の居場所がある気がして、暗闇の獣道をただひたすら歩き続けた。そして、ようやく見つけた最初の居場所が、そう、この国、日本なのだ。

 

 韓国という、生まれ育った国が嫌いなわけではない。日本の大学に留学し、今は日本の企業で働いているが、ホームシックというものは定期的にやってくる。今すぐにでも韓国に帰りたい、と思う瞬間もしょっちゅうある。ならば、どうしてあの国は私の居場所ではなくなってしまったのだろう。その答えは未だにはっきりしていない。もし、中学三年生の私が偶然インターネットで目にした映像が、嵐のメンバーが出演しているドラマではなく、アメリカやイギリス、もしくは台湾のドラマだったら? 小学校六年生の時に、これまた偶然聴いた音楽がJ-popじゃなかったら? 四歳の時、従姉がみせてくれたのがジブリ作品ではなくディズニーのアニメーションだったら? こんな具合に、ifの妄想は尽きない。だけど、私は「となりのトトロ」を観て、東京事変を聴き、「きみはペット」をきっかけに嵐にドはまりし、しまいには日本の大学に行くことを決めた。結局、居場所は自分で作るものというより、流れに身を任せていたら自然に辿り着く場所なのだと思う。国がどうとか、文化の違いとか、まるっきり関係ないのだ。

 ただ、日本という大きな島に辿り着けただけでは、本当の意味での「居場所」は見つ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仮の居場所として東京に住み、それでもなお居場所探しはまだまだ続く。もしかすると一生、本当の居場所なんてみつからずに死を迎えるという、少し切ない結末が待っ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そう思うと一気に心が苦しくなり、気が重くて沈んでしまいそうになる。時に、居場所というのは本当に必要なのか? と自問自答してみる。答えは、Yesだ。だけどそれは、家庭環境とか、人間関係とか、社会に置ける立場とか、ステータスとか、そういう平面的な意味での「居場所」とは少し違う。多分、私の中には、居場所=存在意義という方式があるのだと思う。何も知らないまま、ある日突然この世に生まれ落ちてくる身としては、気がついたらある国の、ある社会の一員になっていただけ。きっと誰しもが、そこからスタートするのだろう。だとすれば、私の存在意義、つまり私の居場所はどこから見つけ出せるのか。まだ20代の若造である自分には、どうしても答えを導き出すのが難しいけれど、諦めようと思ったことは一度もない。むしろ、年齢を重ねるにつれて、居場所への願望は大きくなるばかり。

 一つ思うことは、強い心を持った人は、きっと私の様に居場所を探し、彷徨い、踠き続けることはないだろうということ。私は弱い人間なので、自分一人では居場所を見つけられないし、まず孤独を好まない。家族、友達、夫、同僚と日々色んな会話をしながら、どこかにあるはずの、自分の居場所となる小さな島に流れ着くチャンスは訪れないかと、毎日悶々としながら生きている。嵐との出会い、いや、それ以前に日本のカルチャーに触れてきた経験が、日本という国で私が仮住まいを始めたきっかけ。だとすれば、さらなる居場所を探すには新たな出会いや、経験、そしてその中で得る発見が必要なのかもしれない。

 

 とりあえずできることからやってみよう。やる気が起きないなら起きないで、まずは好きなことをどんどんやっていこう。そう思っていたところに、大学のゼミでお世話になった先輩から、今回の寄稿のお話をいただいたのだ。小さい頃から文章を書くのが好きだったし、「言葉」をすごく大切にして生きてきたと自負している。だから、これは絶好のチャンス到来、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実際、今こうして文章を綴っている最中も、言葉にできないほどの幸福感で胸がいっぱいだ。先輩からしたら、ちょっと面白そうなやつだから書いてもらってもいいかも、くらいのテンション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が、私にしてみれば、居場所探しにとても役立つ経験をさせてもらっているわけで。だから、本当に感謝している。これからも何かあったら、私にぜひ文章を書かせて欲しい(笑)。今回をきっかけに、今後ずっと何かを書き続ければ、その先にまた一つ、自分の居場所が待っている気がしてならないのだ。

 

 ソウルから東京へ、大学から芸能事務所へ、そして未知の世界だった出版社へと、約一〇年の間に何度も環境を変えながら、居場所探しを続けてきた。そして、結婚という選択もまた、居場所探しの原料となってくれている。これから先、もしかしたら東京からニューヨークに移り住むかもしれないし、二度目の転職をするかもしれないし、子どもを産んで母親になるかもしれない。明日のことさえわからないのが人生だが、せっかく命を頂いたのだから、死ぬまで居場所探しを続けてみたいと思う。そして、いつかもし本当の居場所が見つかった時、そのことを報告できたらいいな。


내가 있을  ”|이형주

 

 나는 재일 한국인이다. 내가 일본에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부터 꽤나 유창한 일본어 덕에, 자기소개를 하지 않으면 내가 한국인인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일본에 살았어? 어학원에는 얼마나 다녔어?”라는 질문을 하곤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일본에 온건 대학교 1학년, 스무 때의 일이다. 어학원은 문도 밟아본 적이 없고, 누군가에게 일본어를 배운 적도 없다. 한국과 일본의 혼혈아라던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부터 일본에 살았다던가, 그런 타입이 아니라는 얘기다. 순도 100프로 한국인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일본어로 얘기하는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게 것은 일본의 국민 아이돌 아라시에 빠지면서 시작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라시는 정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10대의 나는, 내가 있을 곳을 찾아헤맸다. 딱히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었던 아니다. 부모님은 사랑을 듬뿍 주셨고, 터울의 오빠와도 사이가 좋다. , 여중에 다녔던 시절에 여자들의 기싸움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생을 했지만,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내가 있을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찾아낸 , 바로 나라, 일본이었다.

 

결단코,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싫었던 아니다. 스무 일본 대학으로 유학을 왔고,  일본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한지 5년이 넘었지만, 향수병은 고질병과도 같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이런 생각이 때때로 머릿속을 가득 차지한다. 이렇게 고국을 사랑하는 내가, 한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을 것일까. 대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만약, 내가 중학교 3학년 인터넷에서 우연히 영상이 아라시의 멤버가 나오는 드라마가 아닌, 미드나 영드, 대만 드라마 였다면? 초등학교 6학년 들은 음악이 제이팝이 아니었다면? 유치원 사촌 언니가 보여준 영화가 지브리 영화가 아닌, 디즈니 작품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끝없이 만약 상황을 상상하곤 하지만, 내가 것은 이웃집 토토로 였으며, 내가 들은 것은 도쿄지헨의 음악이었고, 너는 펫이라는 드라마를 시작으로 아라시에 빠지게 되어, 결국엔 일본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결국엔, 내가 있을 곳은 스스로가 만든다기 보다, 수없이 반복된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태어난 나라라던가, 문화라던가, 그런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정말 나의 있을 곳을 찾았을까? 답은 NO. 어쩌면 평생, 진짜로 내가 있을 곳은 찾지 못한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막히듯 저려오고, 기분은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럴 때면, 내가 있을 곳을 찾는다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항상 나의 대답은, 역시 찾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은 결코, 가정환경이나 인간관계, 사회에서의 지위 같은 평면적인 것이 아니다. 아마도, 안에서 , 내가 존재하는 이유 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렇듯 역시, 어느 갑자기 하나의 생명으로써 세상에 태어나, 어느샌가 나라의, 사회의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안에서 나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 찾을 있을까? 아직 20대인 나에게는, 어쩌면  너무나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갈망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한 가지 말할 있는 것은, 마음이 강한 사람은 나와 같이 찾아 헤맨다거나, 없는 답답함에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살아갈 없다. 가족, 친구, 남편, 동료들과 매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딘가에 있을,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 앞에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의 문화를 접하게 것을 계기로 시작된 일본에서의 생활. 안에서 진짜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의욕이 생기는 날엔,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가득 채워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 대학교 선배인 카와노 상이 이번 기고에 대한 연락을 주셨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좋아했던 나에게는 이것이 마치 절호의 찬스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나에겐 너무나 행복이다. 카와노상은 어쩌면, 얘한테 부탁하면 그럭저럭할 같은데?라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이만큼 귀중한 경험은 또다시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렇기에 카와노상에게는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부탁을 해줬으면 좋겠다(웃음) 이번 기고를 계기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간다면, 언젠가 찾을 나의 으로 이어진 길이 하나 열릴 같다.

 

 

서울에서 동경으로 건너 , 연예인 기획사에서 근무 출판사 에디터로 이직. 10년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내가 있을 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인생의 선택 또한, “ 찾는 하나의 힌트가 되어주었다. 앞으로 나는 어쩌면 동경에서 뉴욕으로 훌쩍 떠날 수도, 이직을 수도, 아이를 낳아 엄마가 수도 있다. 당장 내일의 일도 모르는 하루하루이지만, 사는 인생이니까, 죽을 때까지 한번 찾아보려고 한다. 언젠가 찾는 날에, 카와노상에게 답례를 하고 싶다.